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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윌리암스의 작품이라곤 "유리 동물원"을 읽어본 적 밖에 없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대해서는 실제 미국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존재했다는 사실 밖에 몰랐지만, 막연히 이 공연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거장과 고전에 대한 동경일까요? 아니면 연극을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입장에서 이런 유명한 작품은 좀 봐줘야 자기만족이 될 것 같은 욕망이었을까요? 어쨌든 나이스한 기회로 공연을 보게 되어 너무나 기뻤습니다. 공연 내용이 좀 무거운 관계로 지금 기분은 좀 싱숭생숭하긴 합니다.

몰입! 그것은 웰메이드

블랑쉬는 동생 스텔라에게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곳에서 지낼 수가 있냐며 타박을 했지만, 제 눈엔 무대가 참 예뻤습니다. 앤틱풍이라고 해야하나요? 잘 빠졌더군요. 요샌 무대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만들지 않는 추세라(고 저만 느끼는진 모르겠지만) 더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소도구, 의상, 조명 등 전체적인 분위기도 맘에 쏙 들었습니다.

장면을 전환할 때 조명과 음향이 좀 뚝뚝 끊기는 느낌이 초반부터 들었는데요. 처음엔 실수인줄 알았는데 끝까지 계속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장면 전환이야 특별한 효과를 주고자 하지 않으면 부드럽게 가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라 처음엔 적응이 안되고 막 이상했는데, 보다보니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극 전반의 분위기가(특히 블랑쉬의 심리) 불안정하기 땜에 묘하게 어울린달까요.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게 뭘까요? 전 관객을 얼마나 빨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일단 몰입을 해야 뭔가를 전달하려고 해도 전달할 수가 있으니까요. 또 관객은 즐기기 위해 공연을 보는 것이니까요. 그 점에서 이 공연은 성공입니다. 공연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데도 시간이 후딱 가버립니다. 고전은 관객을 잠재우기에 딱 좋은 소스죠. 그런 이유로 저도 고전은 왠지 살짝 두렵습니다. 그런데 이 공연은 그런 우려를 싹 잠재워주네요. 연출가의 감각, 배우들의 연기, 스텝의 노고가 어우러진 결과겠죠.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나 블랑쉬 역의 배종옥님, 스탠리 역의 이석준님 연기가 아주 끝내줍니다. 특히나 이석준님 연기와 그 몸매에 남자인 저도 반해버리겠더군요. 등장과 동시에 무대를 장악해버리는 그 모습이란...

욕망, 그 인간 본연의 속성

극은 블랑쉬가 점차 미쳐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내 가슴이 시리더군요. 마냥 혀를 차고만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블랑쉬의 모습에서, 스탠리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였으니까요. 인간은 전부 욕망을 가지고 있는 존재니까요.

블랑쉬는 성적 욕망을 갈구합니다. 17살난 제자를 통해서도 그 욕망을 채우다가 학교에서 쫓겨나기까지 할 정도죠. 남들은 창녀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그 이면엔 참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있습니다. 원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블랑쉬는 남편의 자살을 시작으로 상실을 수도 없이 겪습니다. 가족들은 병에 걸려 죽고, 그 부유함 마저 상실합니다. 그런 상실감을 성적 욕망으로 채우고자 갈구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양을 갖추고 문학교사로서 살아왔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이젠 모든 걸 잃었으니 쥐뿔도 없지만, 블랑쉬는 그럴수록 더더욱 있는채를 합니다. 정숙한 척, 교양있는 척, 깨끗한 척합니다. 뜨거운 물에 오래도록 목욕을 해야만 하고, 하얀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죠. 마치 본인마저 속이려드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전등에 갓을 씌우고 밝은 조명을 피해다닙니다. 블랑쉬는 '진짜 블랑쉬의 모습'과 대면하기 싫었던 거에요.

블랑쉬는 강적을 만납니다. 바로 동생 스텔라의 남편은 스탠리죠. 스탠리는 욕망을 숨기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다혈질이죠. 생각하는 족족 입으로, 행동으로 나오는 스타일. 스텔라와의 거침없는 찐한 애정표현, 폭력, 폭언 등을 보면 바로 딱 나옵니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다고 해야할까요.

이런 욕망을 숨기지 않는 밑바닥 인생에게 블랑쉬의 '척'은 엄청엄청 아니꼽게 보였을겁니다. 둘은 당연히 사사건건 대립하게 되죠. 요조숙녀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하며 결혼직전까지 갔던 블랑쉬는 스탠리로 인해 산산조각이 납니다. 문란한 과거가 드러나게 되고, 결국엔 스탠리에게 강간을 당하면서 성적욕망에 사로잡힌 쥐뿔도 없는 '진짜 블랑쉬'와 대면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블랑쉬의 방어기제는 특급경보를 발동시킵니다. 스스로 환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한거죠. 미쳐버린겁니다. 정신병원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그녀의 '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극은 블랑쉬의 비뚤어진 욕망을 중심으로 흐르지만 스탠리 역시 비뚤어진 욕망의 소유자입니다. 없이 살아서인지 돈과 성공에 집착이 있는 듯이 보이며, 다 자기맘대로 하려는(특히 여자를) 마초적인 성향이 굉장히 강하죠. 우린 모두 욕망의 소유잡니다. 그것들은 조금씩 비뚤어져 있죠. 이 극처럼 새드엔딩이 되지 않으려면 내 욕망을 올바로 잡으면서 남의 욕망을 인정해줘야할텐데... 역시 쉽지는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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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6 01:03 2010/04/16 01:03


  1. 지효파파
    2010/04/27 00:23
    아. 늘 웃고 떠들기만 하고 인간의 내면을 성찰한 정통극을 본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네요. 깊이 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당~ 아요 나도 연극보고 싶다.
    • basecom
      2010/04/27 04:22
      확실히 정통극은 요새 트렌드가 아니라 접하기가 쉽지는 않죠. 대중의 입맛에 잘 맞춰도 돈이 될까말까 한게 연극의 현실이니까... 그래도 여전히 찾아보면 있긴합니다. 연극열전처럼 이름값 있는 배우로 대중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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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로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오페라의 유령"(팬텀-윤영석, 크리스틴-최현주)을 봤습니다. 간만에 공연 관람을 하니 좋네요. 딱히 제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런 웅장한 맛도 나름 맛나더군요.

웅장한 맛

공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며 샹들리에가 공중으로 올려지자 가슴이 다 쿵쾅거렸습니다. 웅장한 음악소리와 함께 눈 앞에 펼쳐지는 웅장한 무대! 멋지더군요. 공연 내내 감탄의 연발이었습니다. 큰 극장이 아니면 할 수 없을 화려한 무대와 효과들이 펼쳐졌습니다. 언제 들어도 멋진 "오페라의 유령"의 넘버들이 라이브로 울려퍼졌습니다. 의상도 소도구도 화려했습니다.

웅장한 맛. 현실과 차단된 환상의 세계였습니다. 연극이나 뮤지컬이란 원래 관객들에게 환상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기능을 지니고 있죠. 그렇지만 요새 대학로 연극들은 그런 기능을 많이 활용하지 않습니다. 좀 더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죠. 물론 그런 이야기들도 엄밀하게는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렇게 환상만을 자극하는 공연은 많지 않죠. 이게 이 공연이 지닌 매력의 전부라는 게 아쉽지만(물론 전적으로 제 생각이긴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더군요.

가슴을 흔드는 벅찬 감동은 어디에 있나요?

작품이 지닌 한계인지, 배우들의 연기가 문제인지, 연출자의 연출력이 문제인지, 아니면 제가 피곤한 상태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 확실한건 전 '가슴을 흔드는 벅찬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는 겁니다. 물론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영화로도 이미 봤기 때문에 내용을 다 알고 봤습니다만, '세기를 넘어선 걸작' 이라면 여러 번 보아도 '가슴을 흔드는 벅찬 감동'을 느끼는 게 당연할겁니다. 이건 뮤지컬이지 콘서트나 뮤지컬 갈라쇼는 아닙니다. 뮤지컬이라면 스토리와 대사 전달에도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4월 10일판 "오페라의 유령"은 그런 점에 있어서는 낙제점을 받아 마땅합니다.

일단은 가사 전달, 아니 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반 대사를 전달하는 것보다 노래의 가사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허나 뮤지컬에서 노래의 가사는 대사입니다. 대사가 전달되지 않으면 내용이 부실하게 전달되는 것이고, 그러면 감동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전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내 귀가 고장났나? 라는 의심까지 해봤습니다만 팬텀의 대사 전달은 매우 훌륭하더군요.(역시 팬텀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앙상블도 문제가 있어보였습니다. 대사 전달의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이기도 한데, 종종 여러 인물들이 동시에 혹은 조금씩 겹쳐지게 노래를 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이럴 경우 대부분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더군요. 그냥 웅웅거리는 노래로만 들리구요. 소리도 별로 조화롭게 들리지 않더군요. 어떤 인물의 소리는 크고 어떤 인물의 소리는 작고... 이런 장면을 통해서 주요 인물들의 감정선에 변화가 생기거나 사건의 전환이 이루어지던데, 그런 장면들이 이래서야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배우 간의 호흡 문제인지 엔지니어링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형 뮤지컬의 고질적인 문제인지 이 작품만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기의 디테일이 좀 부족해보였습니다. 다 아는 뻔한 이야기긴 해도 "오페라의 유령"은 충분히 감동이나 슬픔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부모에게까지 버림 받아 사랑을 갈구하며 숨어지내는 팬텀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도 투영시켜볼 수도 있구요.(컴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런걸 전혀 느낄 수가 없더군요. 단지 노래와 춤에만 올인한 듯이 보였습니다.

저에겐 이렇듯 아쉬운점이 많이 보여서 제 스타일은 아니더군요. 하지만 '간만에 문화생활 좀 했네?'라고 느끼기엔 이만큼 제격인 공연이 없을 것 같습니다. 좀 쓴소리를 하긴 했지만 저 역시 괜찮게 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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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1 00:06 2010/04/1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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