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달력이 아쉽다.

무대는 참 잘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였을 지 상상이 되는 무대였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아마추어라 썩 뛰어나진 않았지만, 캐릭터 만큼은 나름 색깔이 나게 구축을 잘했습니다. 하지만 연극은 각각 나눠서 잘해봤자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결국 배우, 무대, 극본, 조명, 음향, 분장 모든 게 모여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해주어야 합니다. 이 극에는 그게 부족했습니다. 연출이 괜히 대장이 아닙니다. 모든 걸 하나로 모아서 잘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떄문에 공연팀에서 대장이 되는 겁니다. 좀 아쉽습니다. 작품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작가의 이력을 보건데 말도 안되는 극본을 쓸 작가는 아닌 듯 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납득이 안간다.

제 눈에는 다모쓰 뿐이 들어오지 않더군요. 물론 주인공이기도 하며, 굉장히 씩씩하게 연기를 잘한 이유도 있지만요. 극 전반에 걸쳐서 그 감정이 공감이 가고 납득이 가는 사람이 다모쓰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모쓰와 그녀의 삼촌 슈헤이가 함께 사는 집에 갑자기 불청객들이 같이 살게되면서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갑자기 살게 되는 그 과정이 도저히 납득이 안되더군요. 사기 결혼을 당해 빈털털이로 임신까지한 마스미의 사정을 왜 다모쓰가 집을 나가는 날까지 비밀로 묻어둬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슈헤이의 자식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 거둬준거라고 하면 다모쓰가 더 잘 받아들였을 것 같습니다. 비밀로 하더라도 다모쓰가 계속 외치는 것처럼 한마디 상의를 왜 안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자상하고 다모쓰를 끔찍히 생각하는 슈헤이 캐릭터 상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이 일들이 밝혀졌을 때 고작 그런 것 떄문에 저 상처 깊은 애를 오랫동안 아프게 했단말이야? 라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다모쓰가 어두운 구석이 있는 캐릭터지만 겉으론 밝고 전혀 이기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캐릭터였는데 말이죠.

그렇게 어설프게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더니 아주 뻔하게 다투는 와중에 유산될 뻔한 위기를 겪으면서 급 화해를 합니다. 도대체 그렇게 첨예한 갈등이 일어났는데 아픈 사람 병원에 한번 데려다줬다고 갑자기 급화해를 하며 급친해지는 게 말이 될까요? 게다가 다모쓰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려져 받은 상처도 거의 치료돼버린 듯 보였습니다.

그외에 불만이라면 몇몇 배우들은 캐릭터를 잡는데 너무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변화가 없는 대사톤을 갖게됐더군요. 캐릭터를 잡기 위해 대사톤을 고정했다는 말이죠. 캐릭터는 얻고 감정이나 표현력을 포기했달까요. 관객 입장에선 귀가 지겨운 느낌이 들죠. 그리고 이 작품의 대사투도 좀 뭔가 일관돼서 지겹더군요. 도치법이라고 해야하나요. "밥 먹자. 배고프니까" 라는 식의 스타일이 너무 써대니까 좀 지겨웠습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전부 어두운 상처를 가지고 있고, 이게 서로 동거를 통해서 해결돼 나가는 내용이기 떄문에 잘만 만들었으면 관객 눈물 좀 뺼 만한 작품이었는데 아쉽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10/09/10 04:03 2010/09/10 04:03


  1. skagns
    2010/09/27 18:17
    항상 연극을 보고 싶다는 욕구는 있는데 참 마음을 먹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ㅎㅎ;;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구요. ^^
    • basecom
      2010/10/02 01:07
      잘 보고 가신다니 감사합니다^^; 연극에 맛들이시면 계속 보고 싶으실 거에요 ㅎㅎ
Leave a Comment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버지를 죽여라?!

일제강점기 때 몇몇 친일파의 자식들이 서로의 아버지를 죽이는 모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의식이 있고 시대가 그러하더라도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일, 혹은 아버지가 죽는 것을 방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모임은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고 하는데요. 이 이야기가 혜화동 1번지 극장에 올려졌습니다. 자리는 불편하고 비좁지만 생각해볼만한 극이 많이 올려지는 정겨운 극장이지요.

극의 시작은 "오이디푸스"를 연습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음을 알게되는 장면을 연습하더군요. 앞으로 극이 어찌 흘러갈지 암시를 해주는 듯 했습니다.

시대의 가혹함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작 칭호를 갖고 있는 친일파 중의 거물입니다. 주인공은 마르크스 사상에 영향을 받은 독립운동조직에 속해있구요. 조직의 상부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를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그 조직의 사상이 사회의 대의가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사상이고, 어떤 일도 감수하겠다는 결심을 한 이들이 속해있지만 아무래도 가족, 아버지는 상당히 특별한 관계니까요.

주인공은 대의를 위해 직접 사살은 하지 않지만 준비를 돕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고 힘들었을까요? 아버지를 죽이는데 협조해야하는 마음, 피하라고 말하지 못하는 마음... 참 가슴 아픈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명은 더욱 가혹해져왔습니다. 동료들이 전부 계획에 실패하면서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돼버리고 만 것이죠. 너무나 가혹합니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인 줄 모르는채 죽였다지만, 이 극의 주인공은 아버지 인 줄 알면서 죽이려합니다.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변화시키자

마지막에 결국 주인공은 아버지를 죽이기로 결심을 하고 아버지를 향해 칼을 휘두르기 직전의 장면에서 사진처럼 극이 끝납니다. 뭐랄까... 좀 극단적인 방법이고, 표현방식이긴 거칠긴 하지만 이런 말이 하고 싶은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제 시대에서 빨리 광복이 되려면 요인암살을 해야했고, 그것이 설사 아버지 일지라도 우리민족을 위해서라면 해야만 하는것이다. 라는 그런 말이요.

지금 현실로 끌고 오자면 그런것들은 악습이나 인습이 아닐까요?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지 않으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지 않을까요? 아직도 친일파의 자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음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386세대 정치인들의 변질됨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패륜은 저랑 코드가 맞지 않아 조금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심장을 도려내는 열정은 필요한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대체적으로 배우들은 무난한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소위 '쩌는 연기'를 하셨다고 느낀 분은 자작역할을 하신 분뿐이었지만, 전반적으로 극의 흐름을 잘 유지하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잘 구축했더군요.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쩌는 연기'나 화려한 무대장치, 안락한 극장도 좋지만 이런 생각해볼만한 내용을 던지고, 내용을 던지는데 부족함이 없는 배우들로 구성된 연극을 보는 것도 참 뿌듯한 일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10/09/08 02:19 2010/09/08 02:19


Leave a Comment
블로그이미지
About
basecom

Recent Trackback




420715
Today : 58   Yesterday :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