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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달리 살리에리가 주인공인 연극 "아마데우스". 보는 내내 나를 갸우뚱하게 했던 것은 살리에리가 신을 원망하고 신에게 대적하고자 하는 모습이 꽤나 비중있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단지 살리에리의 인간적 고뇌의 연장 차원이 아니라 아예 신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내 생각엔 살리에리 내지는 작가가 놓치고 있는 것이 '성품과 사회성도 재능'이라는 사실이다. 살리에리는 '왜 모차르트 저놈은 저렇게 망둥이처럼 날뛰는데 신이 내린 음악재능을 가지고 있는거지?' 라며 분해하지만, 그덕에 모차르트는 단명했지 않는가? 말년이 비참하지 않았는가? 반대로 살리에리는 잘먹고 잘살았다. 후대에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살아있던 당대에 인정받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있을까?

사실 연극을 보기 전까진 살리에리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연극을 보고 나니 "살리에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대표" 라는 말이 참 이해가 안된다. 아니 무슨 음악의 도시 빈에서 당대 최고 음악가로 칭송받으며 궁정악장까지 지낸 사람이 평범하단 말이지? 살리에리가 평범하면 나머지 음악가들은 뭐가 되는가?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같은 천재는 아니어도 수재정도는 되는 사람이다. 더구나 모차르트의 음악재능이 엄청난 것이라는 걸 알아본 사람이 아닌가?

어쨌거나 인간에게 가장 해가 되는 성품은 "욕심"이 아닐까. 살리에리가 모처르트를 보며 시기하기보다 감사할수 있었다면 살리에리도 자신의 도덕성을 파괴하며 괴로워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모차르트의 빛나는 재능이 자신의 것과 다르다는 걸 알고 도왔다면 더 많은 명곡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실제로는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연극에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인 사람으로라도 역사에 남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했을 땐 소름이 돋았다. 살리에리, 아니 인간의 욕심은 소름끼치도록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살리에리는 불후의 명곡은 남기지 못했지만 자신이 주인공인 연극과 영화, 그리고 살리에리증후군이라는 용어를 남겼으니 성공한걸까?

연극 내용을 제외한 이야기를 해보자. 전체적으로 너무 길고 내래이션의 비중이 높아 지루하다. 공연을 두 번 봤는데, 두 번 모두 인터미션 후 비는 자리들이 많았음은 지루함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난 그외 다른 부분엔 대체로 만족하는데, 영화를 봤던 사람들은 그마저도 실망인 것 같았다.

길고 잦은 내래이션은 연출자나 배우에게도 고민거리였던 것 같다. 살리에리 역을 맡으신 배우분은 이런 점 때문인지 내래이션 부분을 굉장히 빠르게 휙휙 대사를 했다. 그런데 좀만 생각해보자. 일상대화가 아닌 내래이션은 많은 정보가 농축되어있어 일상대화보다 더 천천히 말해야하는게 아닐까? 아무튼 그러다보니 오히려 대사가 꼬이고 조금만 집중을 안해도 흐름을 놓치게 됐다. 안그래도 긴데 그 긴 시간 동안 계속 집중을 요구하므로 더 피곤했다. 사실 공연을 두 번 본 이유는 살리에리 역의 배우분이 굉장히 베테량이신데 내래이션 대사가 너무 안들려서 그 날 컨디션이 안좋으신 줄 알았다. 그래서 다시보면 어떨까해서 봤는데... 똑같았다.

내래이션을 라이브로 하다가 녹음된 소리로 하다가 왔다갔다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생소리와 앰프를 통한 소리는 차이가 확연해서 일치감을 줄 수가 없다. 이렇게 할 바에야 내래이션을 전부 녹음해서 하던가, 아니면 내래이션 부분만 마이크를 이용하던가 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영화를 본 사람들은 내래이션 부분이 개선됐어도 별로라고 했을지 모르겠지만, 연극으로 처음 접하는 사람 입장에선 내래이션 부분만 어떻게 개선이 됐어도 꽤 괜찮은 작품이라고 박수를 쳐줬을 텐데 아쉽다. (특히 전형적이긴 했지만 천재연기를 잘 소화한 모차르트 역의 배우와 왕으로 분한 배우의 연기가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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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3 13:32 2012/01/2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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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 무대는 썰렁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배우들의 말과 노래, 움직임과 춤, 그리고 영상이 무대를 꽉 채웠다.

3D 입체영상 신체음악극 "브라브라브라"는 다양한 표현방법을 활용한 실험극이다. 이런 극은 눈과 귀가 즐겁다. 일반적인 극이 흑백사진이라면 이 극은 컬러사진이랄까. (흑백사진이 더 느낌있는 경우도 많으니 뭐가 더 좋다라고 단정지을순 없지만)

특히 구멍이 송송 뚫리고 바퀴 달린 도구를 이용한 3D(?) 영상의 활용이 재밌다. 이 도구를 이용하면 영상을 원하는 곳에 원하는 형태로 쏠 수있다. 3D 영화 같은 효과는 아니지만 영상을 좀 더 폭넓게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쉽게도 영상들이 전반적으로 투박하고,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아서 아이디어 만큼의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재밌고 신선했다.

재밌고 신선한 표현 방법과 달리 이야기는 좀 아쉬웠다. 외모지상주의와 트랜스젠더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정체성 찾기 혹은 자아 찾기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은데, 외모지상주의 이야기와 트랜스젠더 이야기가 연결이 잘 안됐다. 난해한 주제가 아니라 보기 어렵거나 힘들진 않은데 다소 어색한 느낌이 든달까? 중간중간 연기도 어색한 것들이 있었는데 연기력의 문제라기보단 작품의 문제로 느껴졌다.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를 비판하는 것 같았는데, 마지막에 'being beauty' 계모임이 결성되는걸 보니 '그냥 예뻐져서 자신감 찾자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름다움이 꼭 외적인 아름다움을 뜻하진 않겠지만 가슴수술하고 미용실와서 머리하는 아줌마들에게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는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난 미용실이나 성형외과나 외모를 꾸미는 장소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속성은 같다고 생각하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걸까?) 여주인공 써니의 심경변화도 너무 극적이다. 남자친구 대니의 성전환수술로 인해 충격받고 아팠다고 해서 갑자기 예전의 열정과 꿈을 되찾을 이유는 별로 없어보이는데다, 찾는 과정이 너무나 짧게 그려졌다. (뭐.. 대니가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모든걸 포기한 것에 자극받아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게됐다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어색하달까..)

어쨌든 어려운 주제가 아니라 뭘 얘기하고 싶은지 이해는 되는데 어색하다보니 가슴에 확 들어오는 뭔가는 없는 것 같다. 외모지상주의, 성형수술, 트랜스젠더, 성정체성 이런 키워드들이 여전히 사회적 이슈이긴 하지만 더 이상 신선한 소재는 아니기 때문에 자아 찾기로 가는 반죽에 좀 더 신경 썼으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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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1 02:33 2011/11/11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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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이야기는 지루하고 황당할 정도로 간단하다. 근데 어렵다. 뭘 말하고 싶은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자연을 살리자는 공익 연극인가? 아니면 벌에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연극인가? 그것도 아니면 벌에 대해 알려주는 교육용 연극인가? 공연을 보는 내내 머리를 굴려봤지만 도저히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희곡 자체의 주제 내지는 목표가 불분명해보인다. 작가가 '벌'이란 소재로 뭔가 강한 창작욕구를 느낀 모양이지만, 아직 정제 되지 못해 불순물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시적이다.

극이 시작되면 배우 둘이 나와 이 극은 벌에 관한 이야기라면서 벌이 주인공인 것처럼 소개한다. 날개는 두 쌍이고 머리,가슴,배로 구성되고 벌의 종류는 뭐뭐뭐뭐가 있는데 이번 이야기는 꿀벌에 대한 이야기라면서 박진영의 "허니"에 맞춰 춤까지 춘다. 별로 재미도 없고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벌이 소재 정도가 아닌 주인공 수준이라면 저정도 거창한 소개쯤을 참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극을 보면 볼 수록 속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벌 날개가 두쌍이고 눈이 어떻게 생겼고 하는게 극을 이해하거나 몰입하는데 도대체 어떤 도움이 되는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꿀벌이 꿀 1kg을 만들기 위해 키스를 몇 번 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거리를 날아다녀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전에 암환자가 꿀벌로 뒤덮힌 이후에 왜 발정이 났는지부터 설명해야하는 거 아닐까? 그러다가 왜 갑자기 다중이가 되는지 설명해야하는게 아닐까?

암환자한테 꿀벌이 머물다가 떠나간 후에 왜 택배기사는 벌독알러지가 나았을까? 하도 많이 쏘여서 내성이 생겼나? 왜 겜블러 아저씨는 다시 도박을 하겠다고 나섰을까? 죽는 사람 보니까 어차피 죽는 인생 좋아하는 일이나 하다 죽자는 맘을 먹었을까? 네팔노동자는 왜 떠나는걸까? 이 일련의 사건들이 대체 어떤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걸까?

사실 작품 외에 다른 부분들은 괜찮았다. 배우들이 각각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조명을 받으니 장면 장면이 생동감 넘쳤다. 특히나 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장면에선 연출력이 돋보였다. 벌을 표현하는 안무와 연기도 볼만했고, 벌의 윙윙대는 소리도 실감났다. 그치만 다 무슨 소용인가? 껍데기에 불과한 것들이다.

원래 한 번 더 볼 생각이었는데.. 볼까말까? 다시 보면 뭔가 새로운걸 깨달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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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23:52 2011/10/18 23:52


  1. Isabel
    2011/10/19 11:06
    저도 이 공연 봤어요^^ 저는 나름 재미있게 봤는데, 그냥 편한 마음으로 정신을 놓고 봐서 그런지 연기도 만족스러웠고 무대도 마음에 들었거든요.. 한 번 더 보고 싶은 공연이에요!
    • basecom
      2011/10/19 13:00
      저도 무대랑 연기는 맘에 들었어요. 내용이 이해가 안돼서 ㅠ 사실 좀 컨디션이 안좋았는데 그것때문에 이해못하나.. 이러면서 봤어요 ㅎㅎ
  2. 비밀방문자
    2011/10/26 18:08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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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선선했고 공연은 신선했다. 도저히 공연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도리어 그것이 매력포인트였다. 공연 관람을 하는 1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동안 내 정신과 시선은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느라 분주했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는 걸 막을 방도가 없었다.

공연은 서울역 KTX 플랫폼에서 이루어졌다. 배우들은 군중 속에 섞여있었다. 관객들은 계단에 헤드폰을 쓴채 옹기종기 모여 배우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엿듣고, 일상적인 행동을 엿봤다. 이게 그야말로 진짜 사실주의 아닌가? 세트는 완벽했으며, 효과음은 전혀 인위적이지 않았다. 즉석에서 섭외된 엑스트라들의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일상을 훔쳐보는 것 같기도 하고, 3D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보다도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 재밌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는 이야기를 우리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움에 은근한 우월감을 더했다. 마치 플래시몹을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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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헤드폰을 쓴채 계단에 앉아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한다. 뭔가 진지하게 쳐다보고 있지만 관객들이 바라보는 방향에 눈에 띄는 것이라곤 KTX 시간 안내 전광판뿐이다. 배우들은 군중 속에 섞여있어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몇몇 사람들의 "이거 뭐하는거야?" 하는 소리가 배우들의 무선마이크를 타고 굉장히 크게 들린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어떤 사람은 배우에게 다가가서 뭐하는건지 물어보기도 한다.(공연 중단 위기였다.)

이 공연의 매력이면서 아쉬운 점이, 헤드폰을 꼈지만 소음이 너무 잘 들어와서 배우들의 대사가 중간중간 안들린다는 것이다. 여기에 동시통역까지 들어가니 정신이 없었다. 더구나 통역사의 발음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러한 점이 매력인 이유는, 모르는 사람의 일상을 엿듣는 다는 측면에선 이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그래도 답답한건 어쩔수 없더라.)

게리와 스티브는 따뜻하다. 겉보기엔 찌질해보이는 둘이지만, 서로를 받아들이고 신뢰하고 의지하고 걱정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반면 앨런과 심리학자는 차가운 느낌이다. 겉으로 친절하고 상냥하며, 사회적 지위도 돈도 있지만 결국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것을 얻어내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

현대사회에서 따뜻함은 점점 촌스러움이 되어가는 것 같다. 우리는 삭막함을 우려하지만, 삭막함을 추구 하는게 아닐까? 난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인적이 있었을까?

올해는 SPAF에서 이거 달랑 하나 보게됐는데 정말 잘 골랐다.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사진도 여러 장 찍혔는데 조만간 웹에서 보게될 일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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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5 23:13 2011/10/1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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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하면 어렵고 무겁고 길고 지루하다는 이미지부터 떠오른다.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 한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했지만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어파우스트"는 "파우스트"의 초기작으로, 괴테가 일생을 바쳐 노년에 완성한 "파우스트"와 달리 청년시절에 완성된 작품이다. 그래서 "파우스트"보다 덜 어렵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극장을 찾았다. 극은 기대 이상이었다. 속도감과 관객과의 소통, 개그코드가 적절히 맛을 낸 덕에 지루하기는 커녕 극에 빠져들었다.

물론 마냥 쉽고 가볍기만 하진 않았다. 달고 맵고 짜기만 하고 깊은 맛이 없다면 "우어파우스트"와 "파우스트"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대사 하나하나에서 깊은 맛이 우러났다. 고전이 왜 고전인지 그 진가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인간과 인생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20대의 어린 나이에 쓴 괴테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이 작품을 잘 해석하여 보여준 연출과 배우들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굉장히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활용도가 높은 무대세트와 인간 내면까지도 표현해버리는 조명, 아름다움과 공포를 모두 표현하던 종이눈, 상황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노래과 대사 한마디 한마디, 그리고 무대를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특히 메피스토! 그 발성와 발음, 전달력은 전율이 돋을 정도였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인간은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파우스트 박사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걸 가진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습득했고, 악마와의 계약으로 부와 명예를 모두 지녔다. 하지만 남은건 공허함 뿐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이다.
파우스트의 첫 대사가 아주 인상깊다.
"아.. 철학도 신학도 의학도 .. 다 공부했지만 난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그 한계를 초월할 수는 없다. 한계의 극복만을 바라본다면 공허함과 허탈함이 기다릴 뿐이다.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건? 가까이에 있다. 다름아닌 사랑이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 시니컬해진 파우스트도 사랑에 빠지자 기쁘고 생기가 넘쳤다. 물론 사랑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항상 해피엔딩은 아니다.
그래도 모든것을 다 알고자 위만 바라보기보단 주위를 둘러보는게 어떨까?

악마는 어디에나 있고 악은 달콤하다.

메피스토는 세상의 모든 악을 상징하는 초월적 존재다. "우어파우스트"의 특징은 초월적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세상의 비극들이 단지 인간의 한계와 본성때문만은 아니라는 시각인 것이다. 극중에 등장하는 학생과 그레트헨은 메피스토에 의해 철저히 망가지는 인물들이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고 싶었던 학생은 넓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유혹에 빠져버리고 만다. 너무나 순진해서 악이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순진해서 '의학'와 '의악'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메피스토의 개가 되고만다. 자신이 개가 되었다는 것은 알까?

독실한 천주교신자 그레트헨도 악마의 유혹에는 별 수 없었다. 악은 출처를 모르는 공짜 귀걸이와 굽높은구두로 그레트헨의 마음에 작은 공간을 만든 후, 점차 그 공간을 늘려갔다. 결국에는 성적욕망에 빠져 파멸하고 만다. 그레트헨은 마지막까지도 "나를 이렇게 만든 모든 것이 너무나 달콤했어" 라고 한다. 수녀복을 입고 나와 그녀를 정죄한 것도 메피스토라는 걸 알까? 신이 내린 새하얀 눈에 붉은 핏빛을 덧씌운게 메피스토라는 걸 알까?

메피스토의 대사 중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 있다.
"모두들 날 만날 땐 예를 갖춰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들의 영혼을 쓰레기통에 집어쳐넣어줄테니까!"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인 척 학생을 미혹하는 장면과 그레트헨이 파우스트와 성관계를 갖는 장면에서 파우스트 대신 메피스토가 나온 것은 그 상징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정죄 습성

개인적으로는 그레트헨의 오빠인 발렌틴이 상당히 거슬렸다. 가뜩이나 연기스타일도 내스타일이 아닌데 캐릭터가 참 마음에 안들었다. 발렌틴은 동생을 사랑하고 있다. 그냥 남매간의 사랑이 아닌 근친상간적인 사랑으로 말이다. 그것때문에 더 동생을 정죄한다. 그레트헨의 배를 걷어차서 유산에 한몫했으며, 자살로 그레트헨의 죄책감에 벽돌을 얹었다.
임신한 이웃여자 이야기를 할때부터 참 격렬하게 정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굉장히 깨끗한 것처럼. 마치 결벽증에 걸린 사람처럼 말이다. 전체적인 비주얼이 거지같은건 이런 아이러니를 잘 드러낸다.(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레트헨의 대사를 듣자 마음이 뜨끔했다.
"나도 이전까진 조금이라도 검은 것엔 신나게 검은 칠을 덧칠하곤 했는데..."

그렇다. 발렌틴의 모습이 내모습이고 우리모두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도 인생은 축제다?

극의 시작과 끝에 모든 배우들이 먼 곳을 바라보고, 알록달록한 조명이 점멸하는 장면이 있다. 마치 불꽃놀이를 표현한 것 같았다. 난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말이다. 작품은 비극이지만, 인생에 대한 시선은 긍정적으로 유지하자는 이야기로 들렸다. 보약을 먹은 뒤 먹는 사탕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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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1 17:10 2011/10/01 17:10


  1. 아빠소
    2011/10/03 13:27
    이야~ 이런 수준있는 작품이 연극으로 올라왔군요. 글을 잘쓰셔서 읽기만해도
    흥미진진합니다 ^^
  2. 오늘과다른내일
    2011/10/04 09:42
    우어파우스트도 있네요...아직까지 파우스트를 정복하지 못한 1인입니다. 다시한번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난해하지만 충분히 가치가있는 최고의 작품이잖아요..좋은글 정말 잘보고 갑니다
    • basecom
      2011/10/08 18:25
      네.. 저도 우어파우스트를 보고나서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근데 원래 희곡인 만큼 공연으로 보시는 것도 괜찮지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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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극 중 "한여름밤의 꿈"은 굉장히 유명하다. 이 유명한 극을 그간 스토리만 겨우 알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로 드디어 직접 만났다. 처음 만나는 "한여름밤의 꿈"이 원작이 아니라 한국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란 것이 좀 아쉽긴 했지만,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은 그런 아쉬움을 잊게 해주는 명품이었다. 과연 수많은 국제축제에서 초청을 받고, 해외관객들에게도 인정을 받을만 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우리가락, 우리문화의 품에서 멋지게 재창조해낸 것이다!

우리가락과 우리정서가 어우러진 장면 하나하나가 참 맛깔났다.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고 소리를 낸 우리가락 배경음악과 효과음은 귀에 착착 감겨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배우들의 몸은 유연하고 가볍고 날렵하여 도깨비, 사람, 숲을 자유자재로 표현해냈다. 특히 도깨비 역을 맡은 배우들의 동작과 표정은 영락없는 우리 상상 속의 도깨비와 같았다.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맛깔나는 비주얼과 가락에 비해, 대사처리는 그냥 그랬다. 크게 나쁘진 않았지만.. 종종 어색하거나 귀에 쏙 들어오지 않는 대사들이 있었다. 물론 자막 없이 해외관객들과 소통했다는 에피소드처럼 대사의 비중이 높은 극은 아니긴하다.

마당놀이적 요소도 결합되어 있어서 관객들에게 말도 걸고, 호응 요구도 하고, 침도 뿌리고, 수박도 튀긴다. 전에 보았던 "예술하는 습관"과는 달리 제4의 벽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극 내용 자체가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꿈 같은 이야기라서 이런 스타일이 잘 어울렸다. 단지, 침이나 수박튀는건 싫어할 관객이 꽤 있을 것 같으니 자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중간에 도깨비불을 야광팔찌를 날리면서 표현했는데 이건 되게 참신하고 좋았다. 딱 거기까지 좋았는데 야광팔찌를 나누어주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장난도 너무 많이 쳤다. 다음씬 준비하는데 시간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중간중간의 옥의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극 전체가 놀이이며 축제같은 느낌인 것이 맘에 들었다. 막돌이 역할도 도깨비들이 나와서 도깨비 캐릭터로 하고, 극의 끝과 커튼콜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커튼콜 긴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 공연은 그냥 신나고 재밌었다.

극 내용 자체는 단순하다. 마치 큐피트의 화살같은 꽃(?)이 있는데, 자고 있을 때 이걸 코에 뿌려놓으면 깨어난 후에 처음 보는 상대를 죽도록 사랑하게 된다. 도깨비들이 이 꽃을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 하나는 남자 도깨비 '가비'의 바람기를 고치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엇갈린 젊은남녀의 사랑의 작대기를 모두가 행복하게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덤앤더머 같은 도깨비들이 실수를 하고 만다. 이 극은 그바람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희극답게 마지막은 해피엔딩.

극중인물들에게 모든 것은 한여름밤의 꿈으로, 혹은 꿈처럼 기억된다. 도깨비들의 실수 혹은 장난에 의한 것이었지만, 한여름밤의 꿈은 해피엔딩을 좀 더 강렬하게 해줬다. 꼭 고난만이 미래를 위한 자양분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올바른 방향이건 잘못된 방향이건 무언가를 위해 태운 열정 또한 미래를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지 않을까? 나도 생각해보면 한여름밤의 꿈처럼 기억되는 강한 추억들이 있다. 지금도.. 미래에 꿈으로 기억될 추억을 만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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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5 22:43 2011/08/05 22:43


  1. 디셈버08
    2011/09/28 17:02
    연극은 아직 저에게 너무 어려운것 같아요. 한여름밤의 꿈이라니 옥주현씨 목소리가 먼저 떠오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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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흔한 안내 멘트도 없이 시작된 것 같지도 않게 시작됐다. 그리고 '끝난건가? 박수쳐야 하나?' 하는 의문과 함께 끝났다. 인터미션의 시작과 끝도 마찬가지였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처럼 극 전체가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는다. 무대는 연극 연습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다. 심지어 형광등을 켜고 공연한다. 연극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연극 연습실에 고성능 CCTV라도 설치해놓고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이 연극은 극중극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니까, 배우가 배우를 연기한다. 배우와 배우가 연기하는 극중 인물을 순간적으로 오가는 대목이 종종 있었는데, 그 미묘한 차이를 탁탁 잘 표현하는 걸 보고 공연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치 피자 먹는 중간에 마시는 콜라처럼,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극을 중간중간 절묘하게 풀어주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


위대한 사람들의 결점을 보고자 한다는, 극을 여는 대사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무언가 족적을 남기는 사람이거나 예술가에 대해서 나는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차피 똑같은 사람인데? 맞다. 특히나 예술가에 대해선 뭔가 고매하고 우아하고 날카로운 현실감각과 감수성이 동시에 갖춰졌다고 생각해왔다. 아마도 예술가의 예술품 덕일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도 사람이다. 보통 사람보다 사생활이 더 지저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계적 시인이라는 오든이 싱크대에 볼 일을 보고, 남창을 불러 성욕을 해결하는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세계적 음악가인 브리튼은 동성애자 + 소아성애자였다. 자신이 음악을 가르치던 아이들에게 성욕을 품고, 또 해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저녁 때 먹은 음식물들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오든이 했다는 "예술가들의 실제 삶은 위대하지 않다. 그들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과 영감은 모두 그들의 작품으로 가고 실제 그들의 삶에는 찌꺼기만이 남는다" 라는 말이 머릿속을 짙게 맴돈다.

위대한 예술가도 두려움을 떼버리지 못했다는 점은 뭔가 신선한 깨달음을 줬다. 극중극에 등장하는 오든과 브리튼은 내림세에 있지만, 이미 예술가로써 정점을 찍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그 작품으로 인해 자신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두려워한다. 또한 자서전을 통해 사생활이 공개되면, 작품과의 괴리로 인해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두려워한다. 극중극을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자신이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고, 조금이라도 극의 중심이 되길 바란다.

어느 대배우가 말년에 무대 위에서 덜덜 떨었다는 이야기는 '역시 인간은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내가 동아리에서 연기를 할때는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일들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두렵고 긴장된다기 보다 희열에 가득 찼었다. 그러나 프로배우들에게 연기는 직업이고 인생이다. 예술이 일상이 되어 습관처럼 될 때, 두려움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게 아닐까?


상당히 괜찮은 극이었다. 다만 조금 산만하게 너무 많은 정보가 전달되고 있어 소화하기에 버거운 감이 있었다. 아는 만큼 더 보이고 더 느낄 수 있는건 어느 극이나 마찬가지지만 이 극은 그 정도가 상당히 큰 것 같다. 사전지식 부족으로 극을 100% 즐기지 못한건 조금 아쉽다. 또 극중극을 양념이라고 생각해서 상당부분 그냥 흘려보냈는데, 보다보니 극중극이 핵심이었다. 완전한 오판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놓친 것들이 많았는데, 프로그램북이 상당히 충실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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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6 23:17 2011/06/26 23:17


  1. pennpenn
    2011/07/04 16:26
    연극을 직접 본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이 안나요~
    사는게 무언지~
    월요일 오후를 편안하게 보내세요~
    • basecom
      2011/07/04 22:29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 여유를 갖고 연극을 보시는 것도 좋을 것같네요
  2. 안랩인
    2011/07/20 15:28
    편의점에 갔는데 알바하는 친구가 틈틈히 기타를 치고 있었어요. 너무 잘치기도 하지만 아르바이트와 병행되는 기타소리를 들으니 묘했지요. 친구와 보러갈 귀한 연극을 찾고 있는데, 잘봤습니다 :)
  3. 바람을가르다
    2011/07/27 16:39
    대학 때 연기를 하셨군요.^^
    그래서인지 보는 시선이나
    글이 남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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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 동아리 공연 관람이다. 동아리 공연 관람은 언제나 설렌다. 졸업한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내 동아리 시절이 생각나서이고, 지루할 확률 50%를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새내기 워크샵과 동문합동공연이라.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조합이다. 하지만 역으로 굉장히 신선할 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공연장을 찾았다.

체홉의 단막극들이 옴니버스 형태로 무대에 올려졌다. 사실 체홉하면 "세 자매" "갈매기" 같은 대작으로 유명한데, 단만극들도 참 괜찮을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짧고 쉽고 재밌어서 새내기 워크샵 하기에 딱이라는 생각이 든다.

네 작품이 올려졌는데, 새내기 위주의 재학생이 두 작품, 동문이 두 작품을 올렸다. 이런말하면 약간 오지랍이지만 내 블로그니까 내 생각을 써본다. 이런 식이면 동문합동공연의 의미가 거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재학생과 동문이 같은 날짜 같은 극장에서 공연을 동시에 했다는 것 외에 뭐가 더 있을까?  기대했던 신선함은 없었다. 마땅히 있어야할 진부함도 없었다.

재학생 공연은 배우들이 주로 새내기들이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대사 전달력이 부족했다. 전달 가능한 크기로 소리를 내는데는 전부 성공했지만, 그 일정 크기에서 더 줄이지도 더 키우지도 못해 소리가 평이했기에 의미와 감정 전달이 제대로 될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발음을 뭉개는 배우들이 대다수 였다는 점이다. 중간중간 몇마디 대사를 씹는건 괜찮지만 대부분의 대사의 발음이 뭉개지는건 국어책 읽는 연기보다 못하다는게 내 생각이다.

첫번째로 올려진 "결혼 피로연"은 난잡했다. 지루하진 않았다. 근데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도통알 수가 없었다. 대사전달력도 문제였지만 동시에 많은 인물이 등장하다보니 깔끔한 정리가 필요했는데, 이게 되질 않았다. 여배우들이 남자역할을 한 것도 한몫했다. 이러면 당연히 제역량이 나오지 않는다. 새내기라서 역량자체가 높지 않은데 그마저도 100% 발휘하기 힘든 옷을 입혀놓은 꼴이다. 물론 여자가 많이 나오는 극이 굉장히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아쉬운건 아쉬운거다.
하나 좋았던건 각 인물들 모두 자기 대사 없이 앉아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그 상황에서의 행동이 꽤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거 보는 사람은 나같은 사람밖에 없긴하지만;;

"카멜레온" 은 가장 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극의 내용 자체도 그렇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대체로 자연스러웠다. "카멜레온"팀이 역량이 좀 더 좋다기보단 "결혼 피로연"보다 "카멜레온"이 장면 정리하기도, 연기하기도 더 편하지 않았나 싶다. 참 재밌는 풍자극이었다.

개인적으로 재학생 배우 중에 에이스를 꼽자면 "결혼 피로연"에서 희랍사람, "카멜레온"에서 개한테 물린 사람 역을 맡은 배우를 꼽고 싶다. 대사 전달도 잘되고 연기가 자연스럽다. 이친구가 11학번인게 상당히 놀랍다.
"결혼 피로연"에서 전등,전보 얘기하는 역할과 "카멜레온"에서 배달부역을 맡은 여배우도 연기가 상당히 괜찮았다. 둘 다 남자역할이었는데 꽤나 자연스럽게 잘 소화했다. 여자역할할 때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남자배우가 적긴 했는데 남자배우들은 대체로 무난했다. 보통 여자들 발음이 더 좋기때문에 대사전달력이 뛰어날 경우가 많은데, 여긴 남자들이 더 좋았다.
대체적으로 "카멜레온"에 나왔던 배우들은 괜찮았고, "결혼 피로연"이랑 겹쳐서 나온 배우들도 "카멜레온"의 역할이 더 몸에 맞는것처럼 보였다. 특히 개로 나온 배우는 "결혼 피로연"보다 확실히 나은 연기를 보여줬다;;

동문배우들의 연기는 상당했다. 세 분이 나오셨는데 세 분 모두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셨다.
체홉역의 배우분은 목소리가 상당히 좋았다. 크게 힘들이지 않는 듯 보이는데도 귀에 착착 감겼다. 동작이 좀 어색하고 짜여진 느낌이 나긴했는데 되려 클래식한 느낌이라 나쁘지 않았다.(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 에서의 연극장면 같은 느낌이랄까)

"담배의 해로움에 대하여"에 나오신 배우분은 희극배우 같은 적절히 오바된 표정과 몸짓이 일품이었다. 대사와 행동이 되게 자연스러웠다. 딱 하나 아쉬운게 너무 말하듯 대사를 치니까 소리가 너무 작았다. 맨 앞에 앉아서도 귀를 쫑긋 세워야 들릴 정도니 뒷좌석에선 몇마디 놓쳤을 것 같다.

"백조의 노래"에 나오신 배우분이 에이스였다. 행동도 대사도 자연스럽고 적당하고 귀에 쏙쏙 들어왔다. 몰입을 방해하는건 덜렁거리다가 기어코 떨어진 수염뿐이었다.

동문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지만, 극들은 조금 지루했던게 사실이다. 흡입력 있는 모노드라마는 왠만한 연기력 갖고는 되지 않고, 재학생공연에서 빵빵 터졌으면 괜찮았을텐데 거기도 힘들게 지나왔고, 내용 자체가 아직 어린 나에겐 크게 와닿지 않아기 때문이다. 그저 정말 저럴까? 나이 먹는다는건 저런걸까? 난 저렇게 되지 않도록 살아야지. 하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극의 내용보다는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 더 많은 말을 하게 됐다. 극 내용에 집중을 완전히 못했기 때문이다. 살짝 아쉽긴해도, 잠시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꼈다는 것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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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00:10 2011/05/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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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3요소, 4요소를 이야기할 때 '관객'은 꼭 들어간다.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연극 공연에서 관객은 그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관객이 실제 공연에 기여하는 바는 적고, 수동적이다.
관객들이 공연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참여의 문을 너무 활짝 열면 개판이 되겠지만 적당히 열어두면 재밌는 요인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연극 "드라마 만들기"는 관객들이 직접 그날의 주인공 커플을 결정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연극이다. 발상 자체는 굉장히 신선하고 재밌다. 다만 내용보다는 그 새로운 형식이 중심이 되는 공연이기 때문에 '연극'이라기 보다 '쇼'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제벌2세 남자와 가진 것 없지만 씩씩하게 사는 여자와의 러브스토리. TV드라마의 단골 스토리라인이다. 이 이야기를 관객들이 결정한 커플로 보여 준다. 뻔한 스토리를 대놓고 뻔하게 진행시켜서 웃음을 주는 극이기 때문에 종종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이 발생하는건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손발 오그라드는 상황을 주로 선사하는 나쁜남자 캐릭터를 선택한 사람들이 살짝 원망스러운건 어쩔 수 없었다. 요새 그 캐릭터 너무 흔한대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걸보니 드라마에 나쁜남자가 대세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초딩 캐릭터가 맘에 들었다. 선택이 안되서 무대크루 및 엑스트라로 나왔지만 나올 때마다 날 빵빵 터뜨려놓고 가셨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라는 것 자체가 없어보여서 좀 아쉽긴 했지만, 예매사이트의 공연소개에서 이미 그럴 거라는 예상을 하고 갔기에 특별히 실망은 하지 않았다.(같이 갔던 일행 중 몇은 이 부분에 대해 좀 실망을 한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없이 웃기만 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정말 눈물나도록 한바탕 신나게 웃고 왔다. 근데 내용이 너무 없다보니 너무 웃어서 눈물나고 볼이 아픈데도 살짝 루즈한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기본 스토리가 있으니 좀 더 볼만하지 않을까. 기회가 되면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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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1 23:24 2011/05/0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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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70~80년대쯤의 전형적인 시골 촌구석입니다. TV에서 봤다면 흔해빠진 세트라고 생각했을테지만 연극무대로 보니 감탄부터 나오더군요. 진짜 시골동네에 와서 앉아있는듯 리얼한 무대였습니다. 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많이 다뤄졌던 조금은 진부한 이야기였어요. 돈이 웬수라는 이야기죠. 좀 더 행복해지고 싶은데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보니 결국 다들 순수를 잃어버리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맡게되더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에 건달은 필수재료지요.) 모든 비극의 시작은 돈이고, 그놈의 돈 때문에 아직 순수가 남아있는 시골촌구석까지 더러워지고마는 이야기는 참으로 씁쓸하고 가슴을 때리지만 이제 이런식의 스토리텔링은 진부해서 큰 감흥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진부함 속에서도 제 눈과 귀를 사로잡은 이는 바로 눈이 보이지 않는 '지순'이었습니다. 세상 더러움을 보지 않아서 일까요? 아니면 보이지 않으니 욕심이 없어서 일까요? 아니면 진정한 가치가 무언지 알아서 일까요? 그저 새하얗게 맑습니다. 일반적 기준으로 볼때 지순이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몸의 9할이라고까지 표현되는 눈이 안보이죠. 돈도 없죠. 부모님도 없죠. 촌구석에 살죠. 하지만 지순이는 그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해보입니다. 극을 보는내내 지순의 그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에 빠져들었습니다.(이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상당히 뛰어났어요! 그 특유의 코를 찡긋하는 표정을 잊을수없네요.) 지순의 모습을 보니, 너무 눈 앞에 보이는 가치만을 쫓고있는건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얻고자하는건 행복일텐데 말이죠.

전반적으로 무대도 음향도 조명도 좋고 배우들 캐릭터도 살아있어서 즐겁게 관람했습니다. 모자간의 사랑, 남매간의 사랑, 남녀간의 사랑. 조금씩 색이 다른 사랑 이야기를 한번에 보여주고 있어, 가슴 이곳저곳을 건드립니다. 이곳저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렸구요.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진부한 감이 있어서 이 공연 앞에 붙은 화려한 수식어구에는 조금 못 미치는 아쉬운 공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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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6 21:26 2011/03/06 21:26


  1. 별다방미스김
    2011/03/12 09:10
    몸의 9할이라는 눈.. 얼마나 보고싶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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