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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와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


소극장 티켓박스가 공연시작 30분 전부터 북적댔습니다. 좋은 좌석이 탐나 일찌감치 발걸음을 옮겼건만 보조석에 앉게됐습니다. 그나마도 조금만 더 늦었으면 등받이 없는 보조석에 앉을 뻔 했죠. 낯선 광경이었습니다. 연극, 그것도 부조리극, 코미디도 아니고, 멜로도 아니고, 대학로가 아닌 신촌에서 올려지는 평일 공연인데도인산인해를 이루다니 말입니다.

물론 "고도를 기다리며"는 굉장히 유명한 작품입니다. 대표적인 부조리극으로 꼽히는데다 사무엘 베케트는 이 작품으로 노벨상까지 수상했습니다.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고도를 기다리며"로 꼽히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작품성으로 유명한 연극들은 보통 관객들이 은근히 두려워하게 마련인데요. "고도를 기다리며"는 관객을 잡아끄는 뭔가가 있는 모양인가보다 하면서 극장에 들어섰습니다.

우린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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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산울림 all rights reserved


극중 인물들은 우스꽝스럽습니다. 쓸데 없는 말과 행동을 반복합니다. 그나마도 진득히 하지 못하고 삼천포로 빠지기 일수입니다.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바로 직전에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집착합니다. 나름대로 진지하며 고민도 하고 사색도 하는 것 같지만, 어째 다 헛소리로 들립니다. 마치 럭키가 생각한다고 하며 내뱉던 그저 어려운 단어만 나열해 놓은 대사처럼 말이죠.

고고와 디디는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를 때마다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그렇지~" 라는 대사를 기계적으로 내뱉으며 안도할 뿐입니다. '고도를 기다린다'는 건 고고와 디디의 인생목표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그들은 고도를 왜 기다리는지, 고도를 만나면 뭘 할건지 조차 모릅니다. 심지어는 고도가 누군지도 모르죠.

근데..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왜 사는지 모른채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요? 대부분 이루고자 하는 일생의 목표는 있을겁니다. 하지만 왜 이루어야 하는건지, 이루고 나면 뭘 할건지 모른채로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요? 그냥 '난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살고 있어!' 라는 안도감을 위한 목표는 아니었을까요?

우린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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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는 어제 맞지 않아 버려놓았던 신발을 오늘은 꼭 맞는다고 맘에 들어합니다. 하루만에 장님이 되어 돌아온 포조는 오래전에 장님이 됐다고 말합니다. 대체 왜 이런 바보같은 착각을 하는걸까요? 인간이란게 이렇게 멍청한걸까요?

하지만! 이것 또한 디디의 시각이거나 혹은 관객의 시각입니다. 신발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신발을 벗어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죠. 시간이 단지 하루만 지난게 아닐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어제 만났던 포조와 오늘 만난 포조가 다른 사람일수도 있고, 어제 만났던 포조도 사실 장님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뭐가 진짤까요? 누가 착각을 하는걸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전부 사실일까요? 아마도 아닐겁니다. 누구나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필터링을 하니까요. 근데 진짜 사실을 알수는 있는걸까요?

알아채면 뭐가 달라지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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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일순간 디디는 뭔가 잘못됐다는걸 깨닫습니다. 우리 모두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걸 깨닫죠.

하지만 디디는 계속 고도를 기다립니다. 작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본질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고도가 아니면 왜 살아야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일까요? 알아도 벗어날 수 없다? 몰랐으면 행복하기라도 했을텐데.. '모르는게 약이다' 란 말은 이럴 때 쓰는걸까요? 불현듯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릅니다.

인생은 허무하다?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 하려는 것일까요? 사는 것에 대해서 좀 더 넓고 높은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게 보면 의미 없는 일에 매달려서 아둥바둥 살지 않으려면 말이죠. 인생은 짧은 거니까요.

참 어려운 작품이지만 여러번 음미할 수록 깊은 맛이 날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니까 말이죠. 이래서 관객들을 끄는 힘이 생기나 봅니다. 기회가 되면 또 보고 싶네요.


위 포스트에 쓰인 이미지는 모두 인용의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이미지들에 대한 권리는 극단 산울림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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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31 00:34 2009/10/31 00:34


  1. 아르테미스
    2009/10/31 05:50
    연극을 많이 보러 다니시나봐요~?
    부럽습니다.
    전 촌에 살아서 문화적 혜택을 못보고? 산다는 ㅎㅎ
  2. larara33
    2009/10/31 10:10
    잘 읽었습니다. 한국에서 하는 '고도'도 보고 싶네요. ^^
  3. 탐진강
    2009/10/31 10:58
    연극에서 참으로 오래 인기를 끌고있는 작품 같습니다.
    연극도 즐기는 문화가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합니다.
    • basecom
      2009/10/31 11:42
      네~ 연극을 즐기는 문화가 더 활성화되면 좋겠어요. 영화나 TV 못지않은 즐거움이 있거든요^^
  4. 저공비행사
    2009/10/31 12:16
    트랙백 타고 달려왔습니다. 여기는 대구인데, 공연이 순회하는지 궁금하네요
    부럽습니다. 읽고난뒤 연극으로 보고싶었거든요 ^-^
    • basecom
      2009/10/31 12:52
      전용 극장이 있는지라 보통은 전용 극장에서 하는 것 같습니다. 올해 의정부에서 공연을 한적이 있긴하네요. 이렇게 좋은 작품은 전국순회공연 다녀도 좋을 것 같습니다^^
  5. parama
    2009/10/31 12:54
    연극에 대한 글이 많네요. 사실 저는 연극을 한번도 보러가본적이 없어서 무조건 부럽기만 합니다 ㅋㅋ
  6.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0/31 13:43
    어린 시절 TV를 통해 몇 번 본적은 있어도
    실재 연극으로는 못 봤네요
    또 기회가 생기겠지요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basecom
      2009/10/31 19:43
      연극은 TV로 보는 거랑 실제로 보는거랑 천지차이에요. 연극의 생명은 현장감이에요. 뭐라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보시면 무슨 말인지 아실거에요^^; 꼭 직접 보실 기회가 생기길 바랄게요!
  7. 박드번
    2009/11/02 01:05
    저도 이 연극 보고싶었는데 의정부 예술의 전당인가 거기서 하지 않았나요? 멀어서 못봤었습니다. 아쉬웠어요!
    • basecom
      2009/11/02 01:09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도 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신촌에 있는 산울림 소극장에서 봤어요^^; 보니깐 매년 레파토리로 신촌에서 하는 것 같은데 기회되면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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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연영과 졸업공연으로 올려진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을 보게됐다. 내가 "뜻대로 생각하세요" 로 알게된 루이지 피란델로의 작품이다. 뜻대로 생각하세요 에서도 부조리극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더니, 이번에도 어려운 주제를 던진다.

어느 극단 연습실로 작품 안의 등장인물들이 들이닥치고, 그들과 연출,연기자들이 갈등을 빚는 내용이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작가의 입장과 연출가의 입장의 대립을 말하는 듯하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과 스토리를 모두 살리길, 자신이 상상했던데로 올리길 바라는 반면에 연출가는 무대에 올릴만한 스토리를 올리길 원하고, 장면에 따라선 가감을 통해 적절한 극적효과를 주길 원한다. 게다가 아무리 노력해도 연기자들이 완벽한 등장인물이 될 순없다.

또, 이 작품은 배우와 배역 간의 싸움을 보이는 것같기도 하다. 배우는 계속 자기가 맡은 배역의 인물과 싸워야한다. 배우가 배역을 재창조한다곤 하지만 그 배역은 이미 작가가 창조해놓은 인물이다. 그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말을 하는지. 대본에 기초해서 분석을 해야한다. 많은 부분 고민을 해야한다.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나에겐 너무도 어려워서 한번보고 작가가 하고자 하는 얘길 파악할수가 없다. 대본을 찾아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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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2 22:19 2006/09/2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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