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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하면 어렵고 무겁고 길고 지루하다는 이미지부터 떠오른다.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 한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했지만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어파우스트"는 "파우스트"의 초기작으로, 괴테가 일생을 바쳐 노년에 완성한 "파우스트"와 달리 청년시절에 완성된 작품이다. 그래서 "파우스트"보다 덜 어렵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극장을 찾았다. 극은 기대 이상이었다. 속도감과 관객과의 소통, 개그코드가 적절히 맛을 낸 덕에 지루하기는 커녕 극에 빠져들었다.

물론 마냥 쉽고 가볍기만 하진 않았다. 달고 맵고 짜기만 하고 깊은 맛이 없다면 "우어파우스트"와 "파우스트"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대사 하나하나에서 깊은 맛이 우러났다. 고전이 왜 고전인지 그 진가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인간과 인생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20대의 어린 나이에 쓴 괴테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이 작품을 잘 해석하여 보여준 연출과 배우들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굉장히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활용도가 높은 무대세트와 인간 내면까지도 표현해버리는 조명, 아름다움과 공포를 모두 표현하던 종이눈, 상황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노래과 대사 한마디 한마디, 그리고 무대를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특히 메피스토! 그 발성와 발음, 전달력은 전율이 돋을 정도였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인간은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파우스트 박사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걸 가진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습득했고, 악마와의 계약으로 부와 명예를 모두 지녔다. 하지만 남은건 공허함 뿐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이다.
파우스트의 첫 대사가 아주 인상깊다.
"아.. 철학도 신학도 의학도 .. 다 공부했지만 난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그 한계를 초월할 수는 없다. 한계의 극복만을 바라본다면 공허함과 허탈함이 기다릴 뿐이다.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건? 가까이에 있다. 다름아닌 사랑이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 시니컬해진 파우스트도 사랑에 빠지자 기쁘고 생기가 넘쳤다. 물론 사랑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항상 해피엔딩은 아니다.
그래도 모든것을 다 알고자 위만 바라보기보단 주위를 둘러보는게 어떨까?

악마는 어디에나 있고 악은 달콤하다.

메피스토는 세상의 모든 악을 상징하는 초월적 존재다. "우어파우스트"의 특징은 초월적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세상의 비극들이 단지 인간의 한계와 본성때문만은 아니라는 시각인 것이다. 극중에 등장하는 학생과 그레트헨은 메피스토에 의해 철저히 망가지는 인물들이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고 싶었던 학생은 넓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유혹에 빠져버리고 만다. 너무나 순진해서 악이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순진해서 '의학'와 '의악'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메피스토의 개가 되고만다. 자신이 개가 되었다는 것은 알까?

독실한 천주교신자 그레트헨도 악마의 유혹에는 별 수 없었다. 악은 출처를 모르는 공짜 귀걸이와 굽높은구두로 그레트헨의 마음에 작은 공간을 만든 후, 점차 그 공간을 늘려갔다. 결국에는 성적욕망에 빠져 파멸하고 만다. 그레트헨은 마지막까지도 "나를 이렇게 만든 모든 것이 너무나 달콤했어" 라고 한다. 수녀복을 입고 나와 그녀를 정죄한 것도 메피스토라는 걸 알까? 신이 내린 새하얀 눈에 붉은 핏빛을 덧씌운게 메피스토라는 걸 알까?

메피스토의 대사 중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 있다.
"모두들 날 만날 땐 예를 갖춰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들의 영혼을 쓰레기통에 집어쳐넣어줄테니까!"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인 척 학생을 미혹하는 장면과 그레트헨이 파우스트와 성관계를 갖는 장면에서 파우스트 대신 메피스토가 나온 것은 그 상징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정죄 습성

개인적으로는 그레트헨의 오빠인 발렌틴이 상당히 거슬렸다. 가뜩이나 연기스타일도 내스타일이 아닌데 캐릭터가 참 마음에 안들었다. 발렌틴은 동생을 사랑하고 있다. 그냥 남매간의 사랑이 아닌 근친상간적인 사랑으로 말이다. 그것때문에 더 동생을 정죄한다. 그레트헨의 배를 걷어차서 유산에 한몫했으며, 자살로 그레트헨의 죄책감에 벽돌을 얹었다.
임신한 이웃여자 이야기를 할때부터 참 격렬하게 정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굉장히 깨끗한 것처럼. 마치 결벽증에 걸린 사람처럼 말이다. 전체적인 비주얼이 거지같은건 이런 아이러니를 잘 드러낸다.(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레트헨의 대사를 듣자 마음이 뜨끔했다.
"나도 이전까진 조금이라도 검은 것엔 신나게 검은 칠을 덧칠하곤 했는데..."

그렇다. 발렌틴의 모습이 내모습이고 우리모두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도 인생은 축제다?

극의 시작과 끝에 모든 배우들이 먼 곳을 바라보고, 알록달록한 조명이 점멸하는 장면이 있다. 마치 불꽃놀이를 표현한 것 같았다. 난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말이다. 작품은 비극이지만, 인생에 대한 시선은 긍정적으로 유지하자는 이야기로 들렸다. 보약을 먹은 뒤 먹는 사탕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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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1 17:10 2011/10/01 17:10


  1. 아빠소
    2011/10/03 13:27
    이야~ 이런 수준있는 작품이 연극으로 올라왔군요. 글을 잘쓰셔서 읽기만해도
    흥미진진합니다 ^^
  2. 오늘과다른내일
    2011/10/04 09:42
    우어파우스트도 있네요...아직까지 파우스트를 정복하지 못한 1인입니다. 다시한번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난해하지만 충분히 가치가있는 최고의 작품이잖아요..좋은글 정말 잘보고 갑니다
    • basecom
      2011/10/08 18:25
      네.. 저도 우어파우스트를 보고나서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근데 원래 희곡인 만큼 공연으로 보시는 것도 괜찮지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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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와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


소극장 티켓박스가 공연시작 30분 전부터 북적댔습니다. 좋은 좌석이 탐나 일찌감치 발걸음을 옮겼건만 보조석에 앉게됐습니다. 그나마도 조금만 더 늦었으면 등받이 없는 보조석에 앉을 뻔 했죠. 낯선 광경이었습니다. 연극, 그것도 부조리극, 코미디도 아니고, 멜로도 아니고, 대학로가 아닌 신촌에서 올려지는 평일 공연인데도인산인해를 이루다니 말입니다.

물론 "고도를 기다리며"는 굉장히 유명한 작품입니다. 대표적인 부조리극으로 꼽히는데다 사무엘 베케트는 이 작품으로 노벨상까지 수상했습니다.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고도를 기다리며"로 꼽히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작품성으로 유명한 연극들은 보통 관객들이 은근히 두려워하게 마련인데요. "고도를 기다리며"는 관객을 잡아끄는 뭔가가 있는 모양인가보다 하면서 극장에 들어섰습니다.

우린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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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인물들은 우스꽝스럽습니다. 쓸데 없는 말과 행동을 반복합니다. 그나마도 진득히 하지 못하고 삼천포로 빠지기 일수입니다.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바로 직전에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집착합니다. 나름대로 진지하며 고민도 하고 사색도 하는 것 같지만, 어째 다 헛소리로 들립니다. 마치 럭키가 생각한다고 하며 내뱉던 그저 어려운 단어만 나열해 놓은 대사처럼 말이죠.

고고와 디디는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를 때마다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그렇지~" 라는 대사를 기계적으로 내뱉으며 안도할 뿐입니다. '고도를 기다린다'는 건 고고와 디디의 인생목표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그들은 고도를 왜 기다리는지, 고도를 만나면 뭘 할건지 조차 모릅니다. 심지어는 고도가 누군지도 모르죠.

근데..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왜 사는지 모른채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요? 대부분 이루고자 하는 일생의 목표는 있을겁니다. 하지만 왜 이루어야 하는건지, 이루고 나면 뭘 할건지 모른채로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요? 그냥 '난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살고 있어!' 라는 안도감을 위한 목표는 아니었을까요?

우린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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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는 어제 맞지 않아 버려놓았던 신발을 오늘은 꼭 맞는다고 맘에 들어합니다. 하루만에 장님이 되어 돌아온 포조는 오래전에 장님이 됐다고 말합니다. 대체 왜 이런 바보같은 착각을 하는걸까요? 인간이란게 이렇게 멍청한걸까요?

하지만! 이것 또한 디디의 시각이거나 혹은 관객의 시각입니다. 신발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신발을 벗어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죠. 시간이 단지 하루만 지난게 아닐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어제 만났던 포조와 오늘 만난 포조가 다른 사람일수도 있고, 어제 만났던 포조도 사실 장님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뭐가 진짤까요? 누가 착각을 하는걸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전부 사실일까요? 아마도 아닐겁니다. 누구나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필터링을 하니까요. 근데 진짜 사실을 알수는 있는걸까요?

알아채면 뭐가 달라지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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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일순간 디디는 뭔가 잘못됐다는걸 깨닫습니다. 우리 모두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걸 깨닫죠.

하지만 디디는 계속 고도를 기다립니다. 작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본질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고도가 아니면 왜 살아야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일까요? 알아도 벗어날 수 없다? 몰랐으면 행복하기라도 했을텐데.. '모르는게 약이다' 란 말은 이럴 때 쓰는걸까요? 불현듯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릅니다.

인생은 허무하다?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 하려는 것일까요? 사는 것에 대해서 좀 더 넓고 높은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게 보면 의미 없는 일에 매달려서 아둥바둥 살지 않으려면 말이죠. 인생은 짧은 거니까요.

참 어려운 작품이지만 여러번 음미할 수록 깊은 맛이 날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니까 말이죠. 이래서 관객들을 끄는 힘이 생기나 봅니다. 기회가 되면 또 보고 싶네요.


위 포스트에 쓰인 이미지는 모두 인용의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이미지들에 대한 권리는 극단 산울림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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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31 00:34 2009/10/31 00:34


  1. 아르테미스
    2009/10/31 05:50
    연극을 많이 보러 다니시나봐요~?
    부럽습니다.
    전 촌에 살아서 문화적 혜택을 못보고? 산다는 ㅎㅎ
  2. larara33
    2009/10/31 10:10
    잘 읽었습니다. 한국에서 하는 '고도'도 보고 싶네요. ^^
  3. 탐진강
    2009/10/31 10:58
    연극에서 참으로 오래 인기를 끌고있는 작품 같습니다.
    연극도 즐기는 문화가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합니다.
    • basecom
      2009/10/31 11:42
      네~ 연극을 즐기는 문화가 더 활성화되면 좋겠어요. 영화나 TV 못지않은 즐거움이 있거든요^^
  4. 저공비행사
    2009/10/31 12:16
    트랙백 타고 달려왔습니다. 여기는 대구인데, 공연이 순회하는지 궁금하네요
    부럽습니다. 읽고난뒤 연극으로 보고싶었거든요 ^-^
    • basecom
      2009/10/31 12:52
      전용 극장이 있는지라 보통은 전용 극장에서 하는 것 같습니다. 올해 의정부에서 공연을 한적이 있긴하네요. 이렇게 좋은 작품은 전국순회공연 다녀도 좋을 것 같습니다^^
  5. parama
    2009/10/31 12:54
    연극에 대한 글이 많네요. 사실 저는 연극을 한번도 보러가본적이 없어서 무조건 부럽기만 합니다 ㅋㅋ
  6.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0/31 13:43
    어린 시절 TV를 통해 몇 번 본적은 있어도
    실재 연극으로는 못 봤네요
    또 기회가 생기겠지요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basecom
      2009/10/31 19:43
      연극은 TV로 보는 거랑 실제로 보는거랑 천지차이에요. 연극의 생명은 현장감이에요. 뭐라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보시면 무슨 말인지 아실거에요^^; 꼭 직접 보실 기회가 생기길 바랄게요!
  7. 박드번
    2009/11/02 01:05
    저도 이 연극 보고싶었는데 의정부 예술의 전당인가 거기서 하지 않았나요? 멀어서 못봤었습니다. 아쉬웠어요!
    • basecom
      2009/11/02 01:09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도 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신촌에 있는 산울림 소극장에서 봤어요^^; 보니깐 매년 레파토리로 신촌에서 하는 것 같은데 기회되면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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