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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봐라.

하루에 공연 두 편을 연달아 볼 기회가 생긴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두 번째 공연인 "윤이상, 나비이마주"를 보는 중간에 갑자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했던 멋진 말이 떠오르더군요. "전 그저 거인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봤을 뿐입니다." 라는 말인데요. 누군가가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나요?" 라고 물었을 때 했던 답변이랍니다. 이렇게 공연 두 편을 관통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다니, 재밌더군요. '슈퍼 병렬 독서법'인가요. 그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세상 돌아가는 것에 둔감했던 고집쟁이 김밥 장인 이만근의 성장 드라마.

"내 맛이 어때서"의 '이만근 김밥집' 사장 이만근은 '김밥 장인'이라 불릴 만한 사람입니다. 10년간 김밥을 말면서 항상 좋은 국산 재료만 써왔으며, 성실하고 순수한 사람입니다. '진짜 부산 어묵'을 김밥에 넣는다는 맛의 비결도 가지고 있습니다. 진짜 부산 어묵이 들어가지 않은 김밥은 절대 팔지 않는 장인 다운 똥고집도 갖고 있습니다. 그덕에 '이만근 김밥'은 동네에서 인정 받는 명물이 되었지요.

문제는 어느날 '임실 할머니 김밥집'이 요란하게 등장하면서 시작됩니다. 임실의 '삭힌 단무지'를 앞세워 일단 맛에서 '이만근 김밥'을 앞서버립니다. 설상가상으로 '임실 할머니 김밥집'의 오사장은 사업수완도 좋아서 '이만근 깁밥집'은 순식간에 짜부라들고 맙니다. 이만근은 자존심 내지는 자만심 때문에 상대방의 장점 혹은 나의 단점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후에야 상대의 김밥을 맛보고는 패배를 인정하고 체인점으로 들어갑니다.

잠시 다시 행복해지나 했더니, 오사장이 '삭힌 단무지'를 너무 비싼 가격에 공급하자 원상태. 이만근은 직접 임실로 내려가서 '진짜 원조 삭힌 단무지'를 공급받아옵니다. 대박이 납니다. 행복해집니다. 얄미운 오사장은 쫄딱 망합니다. 이 과정에서 오사장의 더러운 비밀들이 드러났기 때문에 더 고소합니다. 하지만, 이만근은 '이만근 다움' 을 잃어버립니다. 사치가 시작되고, 오사장 버금갈만큼 얄미워지기도 합니다. 결국 똑같은 인간인거죠. 이렇게 시니컬한 블랙코미디로 끝나기엔 좀 섭섭하죠. 기세등등하던 '진짜 원조 임실 할머니 김밥'의 이만근은 '삭힌 단무지' 공급에 문제가 생기자 다시 쫄딱 망해버립니다. 좌절하던 이만근은 김밥 재료가 나오는 꿈 속에서 뭔가 깨닫고 자신만의 메뉴를 개발하기로 하고 해피엔딩으로 극이 끝납니다.

사실 '임실 할머니 김밥' 사장이 굉장히 얄밉고, 인간미가 부족하며, 심지어 패륜까지 저지른 나쁜 캐릭터이긴 합니다. 그러나 김밥에 나쁜 짓을 한건 아니고 '삭힌 단무지'를 넣은 김밥은 분명 맛있으니까 장사가 잘 된거죠. 뒷돈을 이용한 홍보마케팅을 하는 모습은 이 인물에 '악'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긴합니다만, '임실 할머니 김밥'은 결국 맛 때문에 성공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단무지를 비싸게 공급하는 것도 결국 수요가 있으니까 가능한거죠. 꼭 나쁜 짓이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그게 싫으면 자신의 아이템을 개발해야죠. 남의 아이템을 가져오려면 그사람이 원하는 만큼의 대가를 줘야하는게 당연한거니까요.

당연히 선한 캐릭터도 충분히 이만근을 위협할 김밥을 들고 나올 수 있죠.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상에서는 자기도 변할 줄 알아야지, 지 잘났답시고 우직하게 버티고만 있어선 아무리 장인이라도 아무 것도 안될 겁니다. 이만근은 변화하는 세상에 의해 위기가 찾아오자 처음엔 버텼습니다. 그다음엔 세상을 따라 했습니다. 따라만 해선 뒤쳐지진 않을지 몰라도 앞설 순 없었죠. '진짜 임실 할머니 단무지'를 공급받을 수 있었던건 우연이자 행운입니다. 결국 남을 따라한 아이템이고 오사장에게 종속된 아이템이기 때문에 남에 의해 무너지기 쉬운 화려한 모래성일 뿐이었습니다.

그 뒤에 드디어 이만근은 자신만의 장점에 자신만의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기로 결심을 하게 된겁니다. 남들과 변화하는 세상에서 배워야 하지만, 배우는 것에서 끝나면 결코 앞서갈 수 없는 거죠. 자신의 색을 넣어야 앞설 수 있는 겁니다. 이만근은 그걸 깨달아 다시 행복해질 수 있었죠.

대가는 '다름'을 인정한다.

두 번째 공연인 "윤이상, 나비 이마주"는 벌써 3번째 보는 공연입니다. 볼 때마다 배우들도 바뀌고 표현 방법도 조금씩 달라지는걸 보는게 재미가 있지요. 달라진 것 위주로 보고 있는데 윤이상 선생님의 독일 유학 장면을 보니 문득 뉴턴의 말이 생각나더군요.

독일로 유학가기 전에 이미 윤이상 선생님은 한국에서 인정 받은 작곡가 였던 것 같습니다. 나이 40이면 이제 슬슬 기성세대로 진입하는 시점이구요. 하지만 남의 것을 배우고자 유학을 갑니다. 유학 가서 서양의 음악을 배우고, 존 케이지나 백남준으로부터 파격적인 예술을 접합니다. 생각이 굳어져 갈 법도 한테 윤이상 선생님은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쭉쭉 흡수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한국의 색, 자신의 색을 넣어 세계적으로 인정 받기에 이릅니다. 아무나 대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릎이 탁 쳐졌습니다. 저도 대학원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데 뭔가 하나의 방법을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을 거부하지도, 세상에만 휩쓸리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색을 집어넣어야겠구나. 요게 이날 제가 공연 두 편을 보면서 최종적으로 든 생각입니다.

추가로 "내맛이 어때서" 공연 얘기

메시지 전달로 향하는 과정에서 다소 억지스런 전개나 억지스런 설정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만, 대체적으로 흐름이 무난했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하면서도 제 입맛에 맞았지요. 주요 인물들의 연기력도 맛깔났습니다.

또 하나 제 눈에 좋아보였던건 바퀴달린 김밥집 틀을 움직이면서 무대에 대한 시점을 변화시켰던 점입니다. 공간이 아예 바뀌는 경우는 많이 있어도 같은 공간에서 시점만 바꿔주는 건 처음봤는데 굉장히 좋더군요.

추가로 "윤이상, 나비 이마주" 공연 얘기

윤이상 같은 경우에 주요 인물들의 연기력은 괜찮은데 멀티맨들의 연기력이 좀 아쉽더군요. 전 어떻게 보면 멀티맨의 연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요. 아무리 다른 사람인척 하면서 나와도 같은 사람인걸 관객들은 다 알거든요. 같은 사람이니까 아까 그 사람이 했던 역할, 이미지와 순간적으로 혼동이 옵니다. 이때 그 사람이 새로운 역할을 인상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극에 몰입이 안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히 이 공연은 멀티맨들이 의상도 갈아입지 않고 같은 모습으로 여러 역할을 연기하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더 중요했는데.. 그부분이 참 아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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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7 23:28 2010/06/2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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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만 인정하지 않았던 거장 윤이상


생존 당시 '현존하는 유럽의 5대 작곡가'에 선정된 적이 있으며, 뉴욕 브루클린음악원 음악당 건물 벽면에 새겨진 '사상 최고의 음악가' 44명(그 중 20세기의 음악가는 4명뿐) 가운데 한사람. 작곡가 윤이상 선생님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전 솔직히 이 공연을 보기 전에는 '유명한 사람'정도로 밖에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2007년 초연 당시 공연을 보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리고 대한민국의 쓰라린 현대사가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음악에 대한 그 순수한 열정! 어찌나 멋지고 아름답던지요. 연극을 보는내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습니다. 늦은 나이에 독일유학을 결심하는 모습, 독일에서 새로운 음악을 접하며 흥분하고 들뜨는 모습, 강서고분 사신도를 볼 때 행복해하던 모습, 옥중에서도 미치도록 작곡을 하고 싶어하던 모습.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도 저런 열정이 있을까?' 하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면들이었죠.

하지만 이 위대한 음악가를 한반도는 품지 못했습니다. 품기엔 한반도의 그릇이 너무도 작았나봅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들었죠. 남한도 북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속이 쓰리고 아프고 화가 났습니다. 그나마 윤이상 선생님같이 아주 대단한 사람들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삐져나오기라도 하지요. 미처 꽃피우지 못한채 수없이 사라져갔을 약간 덜 대단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더욱 슬퍼집니다.

나비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윤이상


윤이상 선생님은 경계와 장벽을 뛰어넘고자 일생동안 노력하셨습니다. 자유롭게 경계를 넘어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말이죠. 음악에선 성공했습니다. 서양의 현대적 음악기법으로 우리 전통음악의 정서를 표현해냈거든요.

하지만 현실세계에선 쉽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난 뒤에 윤이상 선생님은 남북의 화합, 통일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념과 체제의 경계를 음악이라는 예술로 뛰어넘고자 했던 것이죠. 안타깝게도 남북의 정치적 이해관계 덕에 숱한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지요.

한반도의 쓰라린 현대사는 결국 윤이상 선생님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도록 내버려둡니다. A음을 갈망하지만 결국은 G#음까지밖에 내지 못하는 첼로처럼,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채 말입니다. 한반도 모양의 연못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잉어를 부러워하던 모습이 묵직하게 가슴을 찌릅니다. 도대체 이념이, 체제가 뭘까요? 인간보다 위에 있는걸까요?

윤이상을 훌륭하게 보여줬다


윤이상 선생님이 워낙 굴곡있는 삶을 살아오시긴 했습니다만, 지루해지기 쉬운 소재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위인전 스타일의 극이기 때문이죠. 이런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고, 감동적으로 전달한 배우들과 작가, 연출 이하 모든 스텝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윤이상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특히 대단했습니다. 윤이상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도 극의 중심을 딱 잡아주더군요. 2007년에 관람했을 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당시 공연장이 무척 더웠어요. 조명을 받으며 활동까지 하는 배우는 관객보다 훨씬 더울 수 밖에 없구요. 근데 감옥장면이 너무 추워서 펜도 제대로 집기 힘든 설정이거든요. 거기서 연기를 하는데 와..진짜 그때 프로는 다르구나 하는걸 느꼈어요. 분명 땀나고 엄청 더울텐데 진짜 추워보이더라구요.

또한 무대 중앙에 자리 잡은 첼로모양의 세트와 알록달록한 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대가 단순하지만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활용도가 좋았기 때문이겠죠. 막에 영상을 쏴서 음악적 영감을 이미지로 형상화 한다던가, 그림자극을 통한 표현방법이 맘에 들었습니다. 공연 내내 피아노 라이브로 연주되는 실제 윤이상 선생님의 작품들도 공연의 백미입니다.

다만 조명이 좀 어두운 것이 아쉽더군요. 조명감독이 몰라서 그랬을리는 없고, 극장 시설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어서 소극장의 시설이 좀 개선되야할 것 같습니다.

관람 매너의 성숙은 언제쯤?


이번 공연을 볼때도 관객들이 자꾸 소근대고 지들끼리 웃고 난리났더군요. 아주 뒷통수를 팍! 때리고 싶었어요. 극의 흐름에 맞지 않게 웃고 떠들어버리면 극장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관객은 관객대로 배우는 배우대로 말이죠. 연극은 라이브에요. 영화처럼 미리 다 제작해놓은건 관객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연극은 영향을 받습니다. 연극의 3요소, 4요소에 전부 관객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영화의 대사는 스피커에서 빵빵하게 나오기 때문에 좀 떠들어도 잘 들립니다. 하지만 연극은 다릅니다. 배우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소리를 듣기 때문에 관객이 떠드는 소리와 잘 섞여버려요. 스피커를 거쳐서 나오는 소리와 입에서 직접 나오는 소리는 느낌 자체가 다릅니다.

제발 좀! 지킵시다. 할 얘기 있으면 끝나고 하시죠. 연락올 곳 있으면 아예 극장에 들어오질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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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4 01:44 2009/11/04 01:44


  1. 아르테미스
    2009/11/04 05:52
    추천 버튼이 에러네요 ㅜㅜ
    종종 이런 문제때문에 쬐금 거시기 하다는 ^^;;

    날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ㅎㅎ
    • basecom
      2009/11/04 13:31
      방문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아르테미스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2. whitewnd
    2009/11/04 06:50
    연극은 아니지만, 저번달에 여행갔을때 동굴을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자꾸 크게 소리지르고 떠들어서 좀 그랬던 기억이 있네요

    박쥐랑 동굴 생물들 서식처라고 소리 크게 내지 말라고 적혀있는데....
    동굴이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지르고-_-;;

    암튼 좀 그러네요 ㅎㅎ
    • basecom
      2009/11/04 13:33
      사람들이 말을 안들어요 ㅎㅎ 그렇게 하면 왜 안되고 왜 매너가 아니고 이런거 알려줘도 그냥 맘대로;; 이건뭐 반항하는 것도 아니고 ㅋㅋ
  3. 공명이
    2009/11/04 08:48
    마음이 아프네요~~~잘 읽었습니다.
    • basecom
      2009/11/04 13:34
      감사합니다.
      지금이라도 올바로 가슴에 담아두는게 좋을 것 같아요^^
  4. 감성PD
    2009/11/04 10:20
    참 안타깝고 씁쓸한 내용입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안타까운 천재였던 것 같습니다..
    • basecom
      2009/11/04 13:35
      네.. 지금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완전 영웅 대접 받았을텐데 말이죠.. 박찬호 박세리 저리가라죠
  5. 모모군
    2009/11/06 20:48
    정말 안타까운 분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
  6. 탐진강
    2009/11/07 11:27
    윤이상 님은 정말 대단한 작곡가이지요.
    관객들도 성숙한 매너가 필요하겠어요
    • basecom
      2009/11/07 16:30
      네, 저같이 무지한 젊은세대에게 좋은 걸 가르쳐주는 연극입니다^^;
      관객매너는 .. 정말 좋아져야해요. 매너에 관한 공지가 여러 방식으로 나가는데도 무시하는게 문제지요. 시키는대로 하면 지는거라고 생각해설까요?;; 참 이상하지요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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