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죽여라?!
일제강점기 때 몇몇 친일파의 자식들이 서로의 아버지를 죽이는 모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의식이 있고 시대가 그러하더라도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일, 혹은 아버지가 죽는 것을 방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모임은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고 하는데요. 이 이야기가 혜화동 1번지 극장에 올려졌습니다. 자리는 불편하고 비좁지만 생각해볼만한 극이 많이 올려지는 정겨운 극장이지요.
극의 시작은 "오이디푸스"를 연습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음을 알게되는 장면을 연습하더군요. 앞으로 극이 어찌 흘러갈지 암시를 해주는 듯 했습니다.
시대의 가혹함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작 칭호를 갖고 있는 친일파 중의 거물입니다. 주인공은 마르크스 사상에 영향을 받은 독립운동조직에 속해있구요. 조직의 상부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를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그 조직의 사상이 사회의 대의가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사상이고, 어떤 일도 감수하겠다는 결심을 한 이들이 속해있지만 아무래도 가족, 아버지는 상당히 특별한 관계니까요.
주인공은 대의를 위해 직접 사살은 하지 않지만 준비를 돕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고 힘들었을까요? 아버지를 죽이는데 협조해야하는 마음, 피하라고 말하지 못하는 마음... 참 가슴 아픈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명은 더욱 가혹해져왔습니다. 동료들이 전부 계획에 실패하면서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돼버리고 만 것이죠. 너무나 가혹합니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인 줄 모르는채 죽였다지만, 이 극의 주인공은 아버지 인 줄 알면서 죽이려합니다.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변화시키자
마지막에 결국 주인공은 아버지를 죽이기로 결심을 하고 아버지를 향해 칼을 휘두르기 직전의 장면에서 사진처럼 극이 끝납니다. 뭐랄까... 좀 극단적인 방법이고, 표현방식이긴 거칠긴 하지만 이런 말이 하고 싶은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제 시대에서 빨리 광복이 되려면 요인암살을 해야했고, 그것이 설사 아버지 일지라도 우리민족을 위해서라면 해야만 하는것이다. 라는 그런 말이요.
지금 현실로 끌고 오자면 그런것들은 악습이나 인습이 아닐까요?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지 않으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지 않을까요? 아직도 친일파의 자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음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386세대 정치인들의 변질됨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패륜은 저랑 코드가 맞지 않아 조금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심장을 도려내는 열정은 필요한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대체적으로 배우들은 무난한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소위 '쩌는 연기'를 하셨다고 느낀 분은 자작역할을 하신 분뿐이었지만, 전반적으로 극의 흐름을 잘 유지하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잘 구축했더군요.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쩌는 연기'나 화려한 무대장치, 안락한 극장도 좋지만 이런 생각해볼만한 내용을 던지고, 내용을 던지는데 부족함이 없는 배우들로 구성된 연극을 보는 것도 참 뿌듯한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