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되게 괜찮게 봤는데, 본지 10일이나 지나서 제대로 감상을 쓸 수 있을지 걱정되고 아쉽습니다. 쉽지만은 않은 공연이었고 물음표를 많이 던지는 공연이었습니다.
인간 본성쇼?
무대는 마치 패션쇼장 같았습니다. (패션쇼장에 비해 다소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패션모델들이 걸어다니는 런웨이가 무대 중앙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위로는 고골의 작품에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인물들이 걸어다녔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상당히 과장되게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인간 본성쇼 같았습니다. 때론 배꼽빠지게 웃고, 때론 두려워하고, 때론 끔찍해하고, 때론 안쓰러워하며 그 인물들을 바라보았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다 우리의 모습들이더라구요.
고골의 네 작품이 연달아 올려졌는데요. 결말들이 "응?" 혹은 "헐" 같은 반응이 나오게 하더군요. 그로테스크한 등장인물들에 걸맞는 결말들이죠. 생각할 거리를 툭 던집니다. 여운이 남고 생각이 남죠. 이런 스타일의 공연도 참 좋습니다.
인간은 역시 꿈을 먹고 산다.
네 작품의 연결고리는 "결혼" "꿈" "환상" 입니다. "냅스키 거리"의 화가는 거리에서 한 여인을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 여인은 매우 고상할 것이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행복해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윤락가의 여인이었습니다. 꿈이 깨진 화가는 잠을 자고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처음의 행복했던 환상 속에 머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결국엔 자살을 해버립니다. "광인 일기"의 말단 공무원은 시장의 딸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이엔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있었습니다. 사랑을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는 현실인 것이죠. 좋은 집안의 남자와 혼담이 오고가는 것을 알게된 순간부터 말단 공무원은 미쳐가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환상을 만들어냅니다. 종국엔 자신이 스페인의 왕이라고 믿게 됩니다. 꿈이 깨어지자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던 "냅스키 거리"의 화가와 "광인 일기"의 말단 공무원은 스스로 환상을 만들어내려 노력하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죠. 왠지 속이 쓰리고 씁씁합니다.
나머지 두 작품은 꿈을 이룬 케이스를 보여줍니다. "이반 표도르비치 스폰카와 그의 이모"에서 이반은 혼담이 오고간 집안의 아가씨와 좋은 감정을 유지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라고 하자 굉장히 혼란스러워 합니다. 걱정이 태산같이 불어납니다. 거위로 변신하는 아내들이 등장하는 악몽을 꿀 정도입니다. "결혼"에서 남자는 결혼을 매우 갈망합니다. 턱시도까지 미리 구매해놓고 결혼 프로젝트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혼에 성공합니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날 갑작스레 이런저런 고민을 하더니 도망치고 맙니다. 사랑에 성공하고 꿈을 이뤘지만 결국 행복은 얻지 못한 것이죠. 현실의 두려움이 닥쳐오는 것이죠. 이 두 작품을 보고 나선 잠시 멍해졌습니다.
인간은 꿈을 먹고사는, 현실을 이기기엔 나약한 존재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꿈이 깨어져도 문제지만 꿈을 이루어도 문젭니다. 둘 다 꿈이 없어진 것이니까요. 약간 모자르게 사는게 답일지, 꿈을 아주 크게 갖는게 답일지, 꿈을 계속 만들어내는 게 답일지 아직 고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멋진 무대와 연기
런웨이 무대는 정말 깔끔하면서 참신했습니다. 런웨이 바닥에는 몇개의 문이 존재했습니다. 문을 열면 인물들의 등퇴장로로도 쓰이고, 때론 무대장치, 때론 소도구, 때론 대도구로 쓰였습니다. 괜히 무대 미술상을 수상한게 아니더군요.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꿈이 깨어지는 작품들에선 환상에 빠져들어가는 연기가 특히 좋았습니다. 자막 보느라 그 광기에 찬, 혹은 슬픔 가득한 눈빛을 좀 더 응시하지 못한게 아쉬울 정돕니다. 또 꿈이 이뤄져버리는 작품들에선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 표현이 되게 재밌게됐더군요. 특히 결혼에서 온몸으로 내면의 쿵쾅거림과 수줍음과 어색함과 기쁨을 표현하는게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